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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1.27.22 | 은밀한 피난처 > 목양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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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1.27.22 | 은밀한 피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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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MBC
댓글 0건 조회 1,417회 작성일 22-11-2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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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들이 어디가 아프거나 넘어져서 다쳤을 때 울면서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은 바로 ‘엄마’ 입니다.  엄마보다 힘이 센 아빠도 있고

아픔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의사도 있는데, 아이들은 왜 엄마를 찾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엄마의 품 속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줄 수 없는 

위로와 안전함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또 나를 가장 위해 주는 그 분이 나의 아픔과 슬픔을 

편하게 호소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린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른이 되면 이런 피난처는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는 걸까요?  나이가 들면 엄마의 품 같은 피난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착각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어떤 순간이든 피난처를 필요로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단지 엄마에서 다른 것으로 그 피난처가 대체되었을 뿐입니다.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친구들, 고통을 잠시라도 잊게 돕는 술, 

나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주는 직업, 아니면 현실을 회피할 수 있는 환상의 세계 (Fantasized World) 등이 어느 순간부터 새롭게 

지정되는 피난처들의 예입니다.  우리가 피하는 곳이 더 이상 엄마의 품 속은 아닐지라도 새로운 피난처에서 찾기 원하는 것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곳으로 피해서 비밀을 보장받고 안전을 취할 것을 원합니다. 

비밀스럽고 은밀하다고 해서 그 자체가 부끄럽거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진짜 잘못되고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은 바로 그런 마음의 비밀이 드러날까 

두려워서 하나님께로부터 피하여 엉뚱한 피난처에 숨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죄를 지은 후 부끄러움을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고 돌 뒤에 숨었듯이, 

나의 죄와 부끄러움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으로부터 피난처들을 만들어 놓고 숨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도 은밀한 피난처가 있었고,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예수님에게도 그런 피난처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장소를 주님의 장막이라고도 하고 

초막이라고도 했습니다.  언뜻 보면 그 장소는 성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은밀한 곳과 비밀의 장소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숨겼던 다윗의 마음입니다.  그 은밀한 마음 깊은 곳으로 여호와를 초청하여 자신의 가장 비밀스럽고 수치스러운 것까지도 솔직히 고백하고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시고 그에게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피난처는 어디입니까?  가장 힘들고 지쳤을 때 피하고 숨고 위로 받기 위하여 찾아 가는 곳이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피하여 죄와 부끄러움을 

숨기는 곳이 아닌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숨는 그 순간에는 그 부끄러움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해결되어야 하는 그 비밀과 죄가 더욱 깊이 묻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부끄러움 없이 엄마에게 울며 달려가서 아프다고 잘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품으로 달려가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아픔과 수치와 부끄러움을 다 털어 놓아 보시기 바랍니다.  시편 91편의 고백과 같이 여러분의 

피난처 되시고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깃으로 여러분을 덮으시고 날개를 펼치셔서 피할 방패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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