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헌금 안내

목양칼럼 12.4.22 |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목양칼럼

본문 바로가기

목양칼럼 12.4.22 |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PMBC
댓글 0건 조회 1,580회 작성일 22-12-06 10:59

본문


제 오른팔에는 어릴 적 화상의 흔적이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자세히 보기 전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상처이지만, 이 상처는 저에게 잊지 못할 교훈을 남겼습니다. 어떤 교훈이었는지 나누기에 앞서 그 날의 상황을 먼저 설명 드리겠습니다. 정확히 몇 살 때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머니께서 떡을 밥통에 찌고 계시던 날이었습니다. 달콤한 떡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고, 저는 그 떡이 너무 먹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함께 먹자고 하신 어머니의 말씀 때문에 저는 방에서 아버지가 오시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려야 했습니다.  온통 떡 생각밖에 없던 저에게 안방에서부터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잘못 들었던 것인지 듣고 싶은 말만 들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하게 들었던 단어는 “통” 이란 단어였습니다.  저는 그 “통”이라는 단어만 듣고는 어머니가 밥통에 가서 떡을 먹으라고 하신 것이라 넘겨 짚고서 바로 부엌으로 달려가 뜨거운 밥통 뚜껑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리고 밥통 뚜껑을 열자마자 뜨거운 김이 확 올라오면서 제 팔에 열화상을 입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들은 “통”은 밥통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하셨던 말씀은 “어제 입었던 옷을 빨래통에 넣어라” 였습니다.   

  성경 전체에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라는 내용의 문구가  55번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문장을 여러 번 사용하셨는데, 어떤 뜻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말씀을 전했을 때 모두가 한 장소에서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듣지도 않거나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듣고도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이유는, 마치 제가 빨래통을 밥통으로 알아들은 것처럼 나의 소원하는 것이 너무 간절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거나, 듣고 싶은 것만 선택해 듣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 듣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마음 속에 있는 욕심과 나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몸의 부위는 귀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 속에 있는 욕심을 버리는 것과 동시에 해야 하는 일은 그 비운 마음을 성령님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마음은 진공청소기와 같이 항상 무엇인가를 빨아들여 채워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 먼저 내 마음 속에 채워져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 하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자주 합니다.  성령 충만은 바로 성령님이 내 마음에 가득히 채워지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모든 분들 마음 안에는 이미 성령님께서 거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의 사이즈가 어떤 분에게는 Small 사이즈로 어떤 분에게는 Extra Large 사이즈로 바뀌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크기는 변하지 않지만, 성령님을 모시고 있는 성도들이 성령님께 얼만큼 집중하고 관심을 두느냐의 차이는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 여러분이 더 집중하시고 더 관심을 가지신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자연스럽게 성령님으로 충만해 질것이고, 그 분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해 주시는 “귀”를 허락하시는 놀라운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0-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